그라운드와 교단을 오간 이길용, 갑작스러운 이별
영등포공고와 고려대를 거쳐 1983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데뷔 시즌이던 1983년 7골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올랐고, 그 활약을 인정받아 K리그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4년 시즌에는 대표팀 차출이 겹치면서 소속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85년과 1986년 시즌 역시 뚜렷한 존재감을 남기지 못했으나, 1987년 시즌 다시 5골을 넣으며 팀의 리그 2위 달성에 힘을 보탰다. 이후 1989년 포항제철을 떠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정규리그와 리그컵을 합쳐 K리그 통산 92경기 출장, 17득점, 12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국가대표로서는 1983년 3월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83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출전해 3경기에 나섰지만 큰 활약은 없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직후인 8월 3일 과테말라와의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를 불과 13분 앞두고 극적인 만회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알렸다. 이듬해인 1984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고, 같은 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조별리그에도 이름을 올렸다.
선수 시절 그는 소속팀과 함께 K리그 우승을 두 차례(1986년, 1988년) 경험하며 포항제철의 황금기를 함께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0년 신한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2003년,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라운드와 교단을 오가며 축구에 헌신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많은 축구인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겼다.
사커